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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BICian’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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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ChatGPT 시대의 진실한 글쓰기
  • 작성자 정해영 (KOBIC 센터장-책임연구원)
  • 작성일2025-05-19 00:00:00
  • 조회수880
  • 댓글수1

저는 평소에 글 쓰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GenoGlobe.com이라는 개인 도메인 하위의 블로그와 위키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 원고를 써 달라는 부탁이 들어오면 거의 거절하지 않습니다. KOBICian’s Story를 운영하면서 가끔 다음번 투고자를 찾지 못했을 때, 제가 자발적으로 글을 써서 등록하기도 합니다. 원래 매주 월요일 아침 회의 때에 몇 주 뒤의 투고자를 선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출장이나 연휴 등으로 회의를 거르게 되면 다음번 글 쓸 사람을 미처 선정하지 못하는 일이 가끔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재미는 없겠지만 올해의 남은 기간 동안에는 사다리타기를 하여 투고 순서를 무작위로 배정할 예정입니다. 사정이 생겨서 서로 합의하여 순서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자유입니다.

모든 사람이 글쓰기를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 글짓기 숙제를 하느라 고생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욱 힘이 듭니다. 글쓰기를 즐기는 저라고 해서 늘 글감으로 장전된 상태는 아닙니다. 최근 들어서는 정성을 들여서 약간 긴 분량의 글을 쓸 일이 많았습니다. 이럴 때 ChatGPT라는 출중한 도구를 써서 글쓰기를 맡겨보고 싶은 충동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ChatGPT 시대의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공백 포함 2,600자 정도의 에세이를 써 줘”라고 명령을 해 보십시오. 제가 얻은 결과물은 제 블로그에 소개해 두었습니다(링크).

어떻습니까? 주제만 잘 정해서 제시하면 작업물 그대로 KOBICian’s Story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멋진 글이 한 편 나왔습니다(순번이 되었을 때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지 말고 이렇게 하시라고 권장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초안을 다듬거나 분량을 조정할 때에는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인공지능은 최종적으로 검증을 한다는 전제 하에 사실 관계를 확인하거나 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를 찾는 데에는 일반적인 검색보다 무척 편리합니다.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이에 맞추어 논리를 전개해 나가도록 글쓰기를 요청해도 아주 잘 들어 줍니다. 예를 들어 ‘오픈 사이언스는 성배처럼 숭고하다’, ‘오픈 사이언스가 정말 성배처럼 숭고한가?’, ‘오픈 사이언스는 공허한 레토릭에 불과해’-그 어느 것으로든 가능합니다. 심지어 오픈 사이언스에 대한 20단어짜리 궤변을 써 보라 했더니, 이런 답을 합니다. 

- 오픈 사이언스는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그래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민주적인 기만이다.
- 오픈 사이언스는 투명하다고 하지만, 정작 보이는 건 빈 저장소와 엑셀 표 속 예산 보고서뿐이다.
- 오픈 사이언스는 모두를 위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책임질 사람은 없고, 공은 늘 기관장 연설문으로 흘러 들어간다.

ChatGPT 4o Canvas라는 곳으로 작업 환경을 옮기면 마치 대화를 하면서 협업하며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일상의 모든 곳에서 스며들고 있으니, 글쓰기 분야라고 해서 이를 배척할 이유는 없습니다. 특히 효율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단지 제출 기한만 맞추면 되고 제출 후에는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글을 써야 할 때 ChatGPT를 이용하면 더욱 좋을 것만 같습니다. 결과물의 완성도는 분명히 더 높아지며, 이렇게 하여 절약한 시간에는 더욱 가치 있고 창의적인 일에 매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늘 문서를 생산하는 조직 안에서는 ‘이봐, ChatGPT 아직도 안 쓰나? 시간도 없는데 원고 좀 대충 다듬어서 가져와 봐’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하게 될 것이고, 우리가 접하는 글은 외견상 수준이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글이 외부로 나가게 될 때에는 과연 ChatGPT의 도움을 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체중 감량에 성공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위고비를 사용했다고 공개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인터넷 덕분에 쉽게 자료를 찾게 되었을 때 이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인터뷰를 하거나 도서관을 뒤지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워드 몇 개를 넣어서 쉽게 자료를 찾는다면 그것은 올바르게 조사하는 자세가 아니라고. 아마 전화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요? 직접 찾아가서 용건을 전해야지, 최신 기술이랍시고 이렇게 편하고 게으르게 대화를 하려 하면 되겠느냐고요. 지금은 아무도 이런 것을 가지고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술 거부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결국 진정성의 측면에서 늘 고민이 따르게 됩니다. 그 진정성의 방향은 늘 공평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하는 숙제에는 ChatGPT를 이용해도 좋고, 남이 해서 나에게 내는 숙제는 정성을 들여 쓴 것이기를 바라는 양가감정을 가진 것은 아닐까요? 지브리 스튜디오 스타일로 사진 바꾸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였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진실이 아님을 서로가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 혹은 진정성을 기대하는 곳에서는 그렇질 못합니다. 그 누구도 효율을 이유로 자동응답기와 상담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인류 문명에 한번 등장하여 대다수가 그 편리함을 맛보게 된 기술을 이제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논란을 너무 오래 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합니다. 새로운 도구를 잘 활용하여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사회가 새로운 기술을 완전히 수용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새로운 기술을 빨리 습득한 사람이 더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5년이나 10년이 지난 뒤 사회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ChatGPT가 제안하고 자동 생성한 인포그래픽>

 

KOBICian’s story는 KOBIC 멤버가 직접 작성하는 현장감 넘치는 글로서 KOBIC의 업무 방향이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

  • 정해영 (2025-08-22 14:23)

ChatGPT를 저자로 표기하는 것이 옳을까요? 개인 블로그나 에세이라면 "내 저작물"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보다 솔직하게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좋겠습니다. 학술논문에서는 저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책임을 지거나 이해관계·윤리·승인 절차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구윤리 측면에서는 AI가 제공한 내용일 경우 검증을 거쳐야 하겠지요. ChatGPT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는 행위에도 다양한 범위가 있을 것입니다. 키워드 몇 개만 던져주고 일정한 분량과 형식의 글을 쓰게 하는 것과, 전부 본인이 글을 쓴 뒤에 문맥을 매끄럽게 고치고 오탈자를 수정하는 수준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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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BIC에서 인체유래데이터은행 업무를 수행하며 동의서를 검토할 때마다 느끼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제출한 동의서를 살펴보면 대부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별지 제34호 서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동의가 실제로 보장하는 것은 주로 인체유래물, 즉 물리적 생체 시료의 취급입니다. 정작 그 시료에서 생성되고 분석된 데이터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현행 제도하에서 연구자는 연구 수행을 위해 연구대상자로부터 [별지 제34호 서식], 이른바 '인체유래물 연구 동의서'를 기준으로 동의를 받습니다. 이 서식은 물리적 자원인 인체유래물의 유한성과 품질 저하를 전제로, 보존기간과 사용 범위, 반출 조건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기준이 데이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면서 실무에서 반복적인 충돌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데이터는 한 번 생성되면 내용이 닳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며 분석기술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의미가 발견됩니다. 그럼에도 데이터를 소모되는 자원처럼 다루면, 동의서의 시곗바늘이 멈추는 순간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도 함께 멈추게 됩니다.


현장에서는 동의서에서 정한 보존기간이 끝난 데이터가 연구적으로 여전히 유효한 자산으로 남아 있지만, 제도적 불확실성 때문에 활용을 중단하고 폐기해야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는 비단 연구 일정의 지연 문제뿐만 아니라, 공공이 투자해 만든 데이터 자산의 경제적·사회적 효율이 떨어지는 일입니다. 특히 희귀질환이나 소수 집단 연구의 경우, 데이터 재수집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많아 이러한 손실은 더욱 큽니다.

 

동의의 핵심은 보존기간이 아니라 거버넌스입니다. 해외는 데이터의 지속성을 인정하고, 대신 접근 통제와 추적, 감사(audit) 등 절차적 장치를 통해 기증자의 권리와 사회적 공익을 동시에 지킵니다. 미국 NIH에서 사용하는 동의서는 연구자가 연구계획서에 명시한 기간으로 보존기간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며, 무기한 지정도 가능합니다. 영국 UK Biobank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수집된 데이터와 샘플뿐만 아니라 기증자의 의료기록 등 건강 관련 기록에도 접근이 가능하며, 무기한 장기 보존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는 기증자가 행위무능력 상태가 되거나 사망한 후도 포함됩니다.

 

반면 대한민국의 [별지 제34호 서식] 동의서는 연구 목적과 인체유래물 종류 및 수량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게 되어 있으며, 기증자가 보존기간을 지정합니다. 제3자 제공은 기증자가 선택한 "포괄적 연구 목적" 혹은 "유사한 연구 범위"에 한해서만 가능하고, 해외 연구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동의(개인정보 보호법 제28조의8)가 필요합니다. 데이터를 연구 목적으로 제3자에게 널리 분양하려면 [별지 제41호 서식]을 작성하여 인체유래물은행에 기증하는 절차까지 거쳐야 한다는 국내의 제도를 정확히 몰라서 데이터의 재활용이 잘 되지 않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이러한 제한적 구조는 기증자 보호라는 명분은 강하지만, 실제 데이터 활용의 유연성은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만약 한 연구자가 10년 전 암 환자들로부터 동의(보존기간: 동의 후 5년)를 받아 특정 유전자 변이와 항암제 반응성 연구를 완료하고 그 과정에서 생성된 유전체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최근 급속히 발전한 AI 기반 바이오마커 발굴 기술울 이용하여 이로부터 새로운 치료 타깃을 찾는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면, 데이터는 이미 존재하고 연구 목적도 동일하지만, 동의서에 명시된 보존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수백 명의 기증자를 다시 찾아가 재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최초 동의 시점에서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다수 환자의 연락처가 바뀌었거나 이미 사망하여 재동의를 받기 어려운 경우, 해당 데이터는 사장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답의 실마리는 데이터에 특화된 표준동의서입니다. 먼저 해외 사례처럼 broad consent(포괄적/광범위 동의)를 채택해 연구 과제 단위를 넘어 목적군 단위로 재사용을 허용해야 합니다. 보존기간을 설정하는 대신 보안과 거버넌스로 위험을 관리하고, 동의를 일회성이 아닌 갱신 가능한 약속으로 전환해 기증자가 자신의 선택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변경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동의 체계는 세 가지 원칙 위에 서야 합니다.

 

기증자 중심. 선택과 철회, 갱신의 권리를 쉬운 용어와 온라인 절차로 보장하여, 기증자가 자신의 데이터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권한은 필요한 만큼만과정은 투명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범위만 접근을 허용하되, 모든 과정은 기록하고 공개합니다. 데이터 접근 이력을 추적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후 감독 체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권리와 공익의 균형. 개인정보 보호를 전제로 연구의 사회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개인의 권리와 사회적 이익이 상충할 때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인체유래데이터의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면서도 기증자의 권리를 지키는 새로운 동의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 작성자정재은 (KOBIC 선임기술원)
  • 작성일2025-10-27
  • 조회수101
  • 댓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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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계에 놀라운 생명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베리아반도에 서식하는 특정 수확개미 종에서 한 여왕개미가 두 가지 서로 다른 종의 수컷을 생산하는 '제노페리티(Xenoparity)'라는 현상이 관찰된 것입니다. 이는 생명의 진화와 번식 전략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학계에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개미의 수컷(n)은 수정되지 않은 알에서 단성생식으로 생겨나는 반면, 일개미(2n)는 수정된 알에서 발생한 생식 능력 없는 암컷이라는 기본 상식을 일단 기억해 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이베리아반도에서 발견되는 '이베리아 수확개미'(학명 Messor ibericus)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유럽 전역에서 개미를 채집하여 유전적 다양성을 분석하던 중, 예기치 않게 충격적인 데이터를 발견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개미 집단 내에서는 유전적 이형 접합성(heterozygosity)이 낮게 나타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는 같은 종 내에서의 번식을 통해 유전자가 유사하게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베리아 수확개미 중 일부 일개미 집단에서 유독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형 접합성이 관찰되었습니다. 이는 엄마와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유전자 분석 결과는 이들 일개미가 순종이 아닌 '잡종 일개미'일 가능성을 말하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베리아 수확개미의 일개미는 100% 잡종으로만 발견되며, 순종 일개미는 전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반면 여왕개미는 예외 없이 순종으로만 존재하였습니다.

 

연구진은 이 잡종 일개미들이 누구로부터 태어났는지 추적하기 위해 DNA 분석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잡종 일개미의 엄마는 이베리아 수확개미이고, 아빠는 '스트럭터 수확개미'(학명 Messor structor)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두 가지 서로 다른 종의 개미가 교배하여 잡종 일개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DNA 서열 분석을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미스터리가 발생했습니다. 잡종 일개미가 발견되는 지역의 분포를 살펴보니, 이베리아 수확개미와 스트럭터 수확개미가 모두 서식하는 지역뿐만 아니라, 아빠 종인 스트럭터 수확개미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 시칠리아 같은 지역에서도 잡종 일개미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입니다. 마치 호랑이가 없는 동물원에서 라이거(숫사자와 암범의 종간 잡종)가 태어난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스트럭터 수확개미가 없는 지역에서 이 잡종 일개미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연구진은 이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26개의 이베리아 수확개미 군집 내에서 수컷 132마리를 채집하여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44%의 수컷은 털이 많은 형태였으며 나머지 56%는 거의 털이 없는 뚜렷한 형태적 이형성(morphological dimorphism)이 관찰되었고, 계통 분석(phylogenetic analyses)으로도 털이 많은 수컷은 '이베리아 수확개미'(M. ibericus) 그룹에, 털이 없는 수컷은 '스트럭터 수확개미'(M. structor) 그룹에 속하였습니다. 이로써 스트럭터 수확개미 수컷이 이베리아 수확개미 군집 내에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스트럭터 수확개미 수컷이 어떻게 이베리아 수확개미 군집 내에서 발견되었는지 또다시 의문이 생겼습니다. 연구진은 스트럭터 수확개미 수컷의 분자 분석(molecular analyses)을 통해 비밀을 밝혀냅니다. 분석 결과, 스트럭터 수확개미 수컷은 군집 내의 이베리아 수확개미 개체들과 동일한 미토콘드리아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군집 전체가 공통의 이베리아 수확개미 어미로부터 기원했음을 의미하며, 이베리아 수확개미 여왕이 두 종의 수컷을 모두 생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증거였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수컷 개미는 수정되지 않은 알을 통해 모계로부터만 유전자를 상속받는 반수체(haploid)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컷 개미는 모계의 DNA만을 가지고 있게 되지만, 이베리아 수확개미 여왕이 낳은 스트럭터 수확개미 수컷의 핵에는 엄마인 이베리아 수확개미 여왕의 DNA는 없고, 아빠인 스트럭터 수확개미의 DNA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생물군에서도 관찰된 바 있으며, 무핵 난자 수정 또는 모계 유전체 제거로 인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이러한 현상이 종 간의 장벽을 넘어 다른 종의 정자로부터 수컷을 생산하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발견입니다.

 

 

연구진은 이 새로운 번식 시스템을 '제노페리티'(Xenoparity)라고 일컬었습니다. '제노(Xeno)'는 '다른, 이상한, 외부의'라는 뜻이고, '패리티(parity)'는 '생식한다, 번식한다'는 뜻으로, '다른 종의 새끼를 낳는다'는 의미입니다.

 

맨 처음에는 이베리아 수확개미 여왕도 실제 야생계통(wild-type lineage)의 스트럭터 수확개미 수컷과 교배를 통해 잡종 일개미를 생산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타종의 수컷이 꼭 필요하게 되었을 것이며, 의존하는 시스템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그 이후 '정자 기생' 단계를 넘어 그 종의 수컷을 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자연 선택되었고 제노패리티 시스템이 진화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세포·유전학적 기전으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미스테리입니다.

 

이베리아 수확개미의 이러한 독특한 번식 시스템은 생명의 경이로움과 진화의 무한한 창조력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생명의 진화는 인간의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창의적인 것 같습니다.

 

 

<참고 자료>

Juvé, Y., Lutrat, C., Ha, A. et al. One mother for two species via obligate cross-species cloning in ants. Nature 646, 372–377 (2025). https://doi.org/10.1038/s41586-025-09425-w

 

사이언스지의 뉴스(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ant-queen-lays-eggs-hatch-two-species)

Smithsonian Magazine 기사(https://www.smithsonianmag.com/smart-news/these-ant-queens-seem-to-defy-biology-they-lay-eggs-that-hatch-into-another-species-180987292/)

GeekNews(https://news.hada.io/topic?id=23186)

  • 작성자최진혁 (KOBIC 선임연구기사)
  • 작성일2025-10-20
  • 조회수152
  • 댓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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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공개될 월요일 무렵이면 저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행을 그렇게 즐기는 사람은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 계획대로 풀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은 추석 연휴 동안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딸을 일 년 만에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며칠간의 연차 휴가를 덧붙인 특별한 여행이었습니다. 최근 환율도 너무 올랐고 외국에 대하여 우호적이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 때문에 입국 심사 과정에 혹시 차질은 없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출국 직전까지 서울과 고양, 그리고 제주도를 오가면서 바쁜 업무를 소화하느라 혹시 비행기를 못 타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지 많은 걱정을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여정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별다른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이라서 안전하게 여행을 다 마쳤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모든 걱정의 95%는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실감하였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이거나, 또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일이라서 걱정을 해 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행이란 어찌 보면 통제할 수 없는 알약 하나를 삶에 풀어 넣고 들이키면서 이를 즐기거나 심지어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기회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날씨가 완벽하고, 공항 수속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숙소는 청결하고, 모든 것이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경험만 한다면 그만큼 재미없는 여행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도 이번 뉴욕 여행에서 구글맵에 의존하여 현대미술관(MoMA)을 찾아가다가 잠시 길을 잘못 접어들었을 때, ‘파파라치 도그맨과 래빗걸’(Paparazzi Dogman & Paparazzi Rabbitgirl)이라는 공공미술 조각 작품을 우연히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영어 소통은 여행에서 접하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언어란 원칙적으로 통제 가능하지만 능통해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이지요. 브롱크스행 지하철이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다른 노선으로 우회한다는 안내 방송을 가까스로 알아듣고, 작년에 뉴욕을 방문하여 지하철에서 겪었던 얄팍한 경험―엄청나게 고생했다는 뜻임―을 동원하여 분기점 역에서 가까스로 내렸습니다. 뒤 그곳으로부터 목적지를 가기 위해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센트럴파크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며 정말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였습니다. 그 순간에는 순발력있게 잘 대응했다고 잠시 우쭐하였지만, 결국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는 의사소통 문제로 또다시 좌절감을 겪었답니다.


인생이라는 잘 설계된 짐꾸러미에 내가 원하지 않으니 ‘우연’을 넣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할 것이고, 일부러라도 넣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글의 주제입니다. 생물학적 언어로 말하자면 우연은 변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이는 혁신의 원동력이자 피할 수 있는 생명의 속성입니다. 변이체는 지금 당면한 현실에 가장 적합한 형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다양한 변이를 시도할 때 변화하는 환경에 언젠가 적응하여 세상의 주류가 되는 날이 오게 됩니다. 종종 이방인이나 소외자가 세상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 너무 단조롭고 원하는 대로 술술 잘 풀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연이라는 난수 발생기를 일부러라도 한번 돌려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여행은 아주 좋은 선택이 됩니다.


여행은 문화와 역사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예를 들어 뉴욕시에는 화재 탈출용 철제 사다리(fire escape)를 외부에 갖춘 고풍스러운 주거용 건물이 아직도 많이 있는데, 이는 당시 법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서 건물이 지어진 지 최소한 90년이 넘었음을 증명합니다. 원주민과 주류 이민자 및 사회적 약자를 포함하여 뉴욕이라는 도시를 형성하는 다양한 구성원의 권리와 문화를 존중하고 포용하려는 운동과 전시를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면 본인의 경제적 형편에도 잘 맞아야 하고, 세계와도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저개발국가의 싼 물가를 이용하여 호사를 누리는 여행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그곳을 방문하여 돈을 쓰기 때문에 그들이 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그 나라의 경제가 돌아가게 한다는 다분히 소비자적이면서 우월한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도한 여행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나 자연환경을 해치고, 그들을 저임금 관광 산업 종사자로 얽어매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뉴욕시 지하철에 붙은 질서 유지 안내문에서 부주의하거나 무관심한 방문자(inattentive visitors)는 되지 말아 달라는 글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광객이니까 아무리 실수를 해도 용서가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관광객을 상대하면서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현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K-문화 신드롬 때문에 이제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도 급증하였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지나치게 배타적인 생각을 갖지 말고,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잘 대우받기를 기대하듯이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을 대해야 합니다.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가 만들어진 이유는 아니다.’라는 멋진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연은 모험과 성장의 씨앗이 됩니다.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서 우연은 늘 예기치 못한 바람처럼 불어옵니다. 그 바람이 때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항구를 떠나야 비로소 바다의 넓이를 알 수 있듯이,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야 세상의 다양함과 인간의 너그러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이 제게 가르쳐 준 것은, 안전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우연이 열어주는 성장의 가능성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여 편의 유튜브 쇼츠가 추억으로 남았고, 이를 만드느라 동영상 편집 기술도 많이 늘었답니다.

  • 작성자정해영 (KOBIC 센터장/책임연구원)
  • 작성일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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